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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의성 x 시연

토요일 밤 열한 시, 폐업한 물류창고 지하.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오면 형광등 여섯 개 중 네 개만 살아 있는 공간이 나온다. 남은 불빛이 낡은 콘크리트 바닥을 반쯤 밝히고, 나머지 반은 어둠에 잠겨 있다. 바닥 구석에는 앞서 여기서 싸운 놈들이 남긴 얼룩이 배수구를 중심으로 말라붙어 있다. 물만 씻겨 나간 자국이 아니다. 공기가 무겁다. 환기가 안 되는 지하라 낮의 열기가 밤까지 남아 있고, 오래된 곰팡내에 쇠 냄새가 섞여 있다. 노의성이 먼저 도착해 있다. 상의를 벗고 벽에 기대앉아 손에 붕대를 감는 중이다. 손등 세 바퀴, 손목 고정. 가슴과 어깨에 부피가 실린 몸, 두껍게 갈라진 복근. 바닥 한가운데에는 타이머가 놓여 있다. 5분, 인터벌 1분에 맞춰져 있다. meetfight에서 매칭된 상대 — 그러니까 당신이 계단을 내려오는 참이다. 룰은 앱에서 이미 합의됐다. 한쪽이 못 일어날 때까지. 말리는 사람도, 세는 사람도 없다.

계단 내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든다. 붕대 감던 손은 멈추지 않은 채, 위에서 아래로 한 번 훑는다. "왔네." 붕대 끝을 이로 물어 당겨 고정하고, 주먹을 두 번 쥐었다 편다. 뼈 맞물리는 소리가 빈 지하에 작게 울린다. "룰은 앱에서 본 대로다. 딴말 없지." 일어선다. 벽에서 등을 떼는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다. 턱짓으로 바닥의 타이머를 가리킨다. "몸 풀어. 그 정도는 기다려준다."

폐업 창고 지하에서 상의를 벗은 노의성이 붕대를 감고 일어서며 상대를 응시한다
폐업 창고 지하에서 상의를 벗은 노의성이 붕대를 감고 일어서며 상대를 응시한다
시연

너 쫀거같은데? ㅋㅋㅋ

노의성의 손이 멈춘다. 방금까지 아무 의미 없이 조여 두던 붕대 끝이 손가락 사이에서 팽팽하게 당겨진다. 웃음 섞인 말이 지하의 낮은 천장 아래서 한 번 튕겨 나간다.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시선이 달라진다. 네 얼굴에서 어깨, 팔, 허리, 발끝으로 천천히 내려갔다가 다시 눈으로 올라온다. 상대의 말보다 몸이 먼저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는 눈이다.

노의성

쫄았냐.

짧게 뱉은 뒤 붕대 끝을 끊는다. 천 조각이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노의성은 손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타이머 앞으로 걸어간다. 발바닥이 콘크리트를 밟을 때마다 물기 어린 바닥에서 낮은 마찰음이 난다.

타이머의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도 바로 누르지 않는다. 고개만 조금 기울인다. 도발에 말로 반박하는 대신, 네가 서 있는 공간까지 자신의 몸으로 거리를 재는 움직임이다. 한 걸음. 다시 반 걸음. 빠르지 않다. 피할 틈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도망칠 수 있는 각도를 하나씩 지워 간다.

노의성

그럼 확인해.

버튼을 누른다.

전자음이 지하를 가르고, 첫 5분이 시작된다. 노의성은 곧장 뛰어들지 않는다. 양손을 얼굴 높이까지 올리고 턱을 안으로 말아 넣는다. 어깨가 넓게 벌어져 상체가 하나의 벽처럼 선다. 왼발이 미끄러지듯 반 발 전진한다.

그리고 멈춘다.

거리가 애매하게 좁혀진다. 주먹이 닿을 듯 말 듯한 위치다. 상대가 먼저 손을 뻗으면 맞받아칠 수 있고, 물러나면 다시 따라붙을 수 있는 거리. 노의성은 그 경계에서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숨은 낮고 고르다. 지하의 열기가 피부 위로 올라오지만,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다.

노의성

입은 빠르네.

왼손이 짧게 튀어나간다. 얼굴을 노린다기보다 시선을 묶는 잽이다. 닿든 막히든 확인하는 순간, 오른발이 바닥을 밀며 몸 전체가 따라붙는다. 노의성은 주먹 하나를 던지고 끝내지 않는다. 가드 위로 압력을 걸고, 다시 반 발. 맞아도 멈추지 않을 거라는 움직임이 먼저 들어온다.

주먹을 거둔 뒤에도 팔을 완전히 내리지 않는다. 어깨 너머로 타이머의 숫자가 바뀌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유리해지는 사람이 따로 있다. 노의성은 그 사실을 믿는 몸처럼 선다.

노의성

들어와.

이번에는 턱을 살짝 들어 올린다.

노의성

그 말 책임져.

손을 한 번 턴다. 손등의 붕대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아까까지 남아 있던 기다림은 사라졌다. 대신 상대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든 따라갈 준비가 된 압박이 지하 전체를 채운다. 노의성은 다시 반 발을 내딛고, 주먹을 쥔 채 조용히 선다. 먼저 끝내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 끝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사람의 자세다.

형광등 하나가 늦게 깜빡인다. 그 짧은 어둠 속에서도 노의성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는다.

시연

치열한 난투전 시작

타이머의 전자음이 아직 귀에 남아 있는 채로, 노의성의 왼발이 다시 바닥을 민다. 반 발. 그다음은 또 반 발. 거리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빠르게 죽는다. 지하의 열기가 양쪽 어깨 사이로 달라붙고, 형광등 불빛이 땀이 맺히기 시작한 등줄기를 희미하게 적신다.

노의성은 가드를 얼굴 앞에 고정한 채 상체를 벽에 가까운 쪽으로 틀지 않는다. 가운데를 가져가겠다는 움직임이다. 왼 훅이 짧게 나간다. 턱이 아니라 어깨 선을 스치도록 던진 압박용. 이어서 오른 보디. 복근 높이를 정확히 노린 짧은 직선. 뻗는 동시에 이미 다음 반 발을 준비하고 있다. 맞아도 멈추지 않는 몸, 막혀도 압력을 거두지 않는 리듬.

노의성

그게 다냐.

숨이 섞이지 않은 단문이다. 표정은 처음과 같다. 다만 눈이 더 가만히 있다. 상대의 가드가 올라가면 아래로, 아래로 가면 가드 위로 손을 얹어 미는 식의 단순한 Forward. 노의성은 화려한 콤비네이션을 쓰지 않는다. 대신 같은 각도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공간을 지운다. 발밑의 콘크리트가 약간 미끄럽다. 누군가 남긴 물기, 혹은 오래전 씻겨 나간 자국. 그 위를 디딜 때마다 발바닥이 낮게 마찰음을 낸다.

클린치 거리를 만들기 직전, 노의성은 일부러 반 박자 늦춘다. 상대가 붙으려 하면 붙게 두고, 쉬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알려 줄 준비를 한다. 손가락이 이미 살짝 벌어져 있다. 복근을 움켜쥘 각도. 아직은 던지지 않는다. 먼저 주먹으로 호흡을 끊는 쪽을 고른다.

오른 훅이 크게 호를 그린다. 가드 위로 올려 맞더라도 충격이 어깨뼈를 타고 내려가도록 체중을 실은 한 방. 던진 직후 왼 무릎을 살짝 들어 중심을 낮추고, 다시 앞으로. 노의성의 싸움은 항상 그 패턴에 가깝다. 맞아 주는 척하며 반 발, 거리를 죽이면 몸통. 몸통이 열리면 다시 얼굴. 말이 줄어들수록 손이 무거워진다.

타이머의 숫자가 어디쯤인지 보지 않는다. 여기는 라운드 끝이 곧 휴식인 곳이 아니다. 인터벌은 서 있을 힘이 남은 사람만의 것이다. 노의성은 숨을 코로만 고르며 어깨를 한번 돌린다. 붕대 감긴 주먹 사이로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조여 있다.

갑자기 속도를 올린다. 왼 잽—오른 보디—왼 훅. 세 개가 거의 한 호흡에 붙는다. 마지막 훅을 거두고도 물러서지 않는다. 가슴이 상대 가드에 닿을 듯한 거리까지 밀어붙인 채, 낮게 깔린 목소리로 한마디만 얹는다.

노의성

들어와.

도발을 다시 받지 않는다. 대신 턱을 살짝 들고, 가드 사이로 시선만 고정한다. 피하거나 받아치거나, 붙거나. 선택지는 상대에게 남겨 둔다. 다만 어떤 쪽을 고르든 노의성은 그 자리에서 반 발 더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등 뒤로 배수구 쪽이 어둡게 열려 있고, 형광등 하나가 또 한 번 짧게 깜빡인다. 그 깜빡임 사이에도 노의성의 발은 멈추지 않는다.

Sweat이 아니라 땀이 눈썹 끝에 맺혔다가 떨어진다. 아직 스테미나는 충분하다. 아직 허리는 단단하다. 그래도 노의성은 이미 다음을 계산한다. 상대가 크게 나오면 가드 위로 받아 안고 보디를 연타할 것. 뒤로 빠지면 각을 잠그고 코너가 아닌 벽 쪽으로 몰 것. 항복은 없다. 세는 사람도 없다.

주먹을 한번 쥐었다 편다. 뼈 소리가 작게 다시 난다.

노의성

책임져.

그 말과 함께 왼발이 또 한 번 앞으로 미끄러진다. 거리가 사라지기 일보 직전. 노의성은 공격을 멈추지 않은 채,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눈으로만 기다린다. 지하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고, 타이머만 혼자 차갑게 숫자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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