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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호 VS 권준수

권준수 은 이곳 NYX (닉스)의 거대한 투기장의 링 한가운데 서있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선 링 위의 두 선수를 비추며 스피커에선 큰소리로 두 선수를 소개하고 있다.

곳곳에 배치된 카메라를 통해 비친 두 선수의 모습이 비추며 거대한 전광판에 생중계 된다.

짧은 자신의 소개가 끝나고, 이 투기장의 간판 선수인 한지호의 소개와 이름이 큰소리로 울려 퍼지며 분위기를 압도한다.

소개가 끝나고 두 선수는 링 중앙에 모여 심판을 통해 경기의 규칙을 듣고있다. 설명이 끝난 후 경기 시작 전 한지호는 당신에게 말을 건다.

한지호

잘 부탁 드립니다. 한지호 입니다. 좋은 경기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규칙 잘 들으셨죠? 각오 하셔야 할 겁니다. 제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저는 명령에 따를뿐..

경기 시작 공이 울리고 권준수는 자신의 글러브 낀 양팔을 내 앞으로 내밀며 글러브터치를 제안한다.

권준수

권준수입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 유명한 한지호 맞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지호

...예...그럼

한지호는 권준수가 내민 글러브터치에 응하며 대답한다. 글러브가 맞닿는 순간, 한지호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린다. 권준수의 포식자 같은 시선을 받아들이면서도 얼굴 근육은 철저히 통제된 상태다. 심판의 손이 내려가는 찰나, 권준수의 주먹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온다.

한지호는 재빠르게 몸을 옆으로 빼낸다. 권준수의 펀치가 공기를 갈라 지나간다. 미묘한 바람의 떨림이 얼굴을 스친다. 하지만 그는 후퇴하지 않는다. 즉각 반사적으로 왼쪽 훅을 권준수의 갈비뼈 쪽으로 날린다.

움직임은 기계적이고 정확하다. 감정이 배제된 순수한 근육의 움직임. 마치 명령받은 기계처럼—

한지호

나쁘지 않군.

한지호의 목소리는 차갑다. 도발도, 자신감도 아닌. 그저 사실의 진술이다. 그런데도 그 말 속엔 뭔가 날카로운 것이 숨어 있다. 마치 상대의 심리를 흔들기 위한 정확한 일침처럼.

다시 디펜스 자세로 돌아서며 권준수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린다. 호흡은 고르고, 눈은 집중되어 있다.

권준수는 한지호의 훅을 간신히 팔로 막아낸다. 충격이 팔뚝을 타고 몸 전체로 전해지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묘한 웃음이 맺힌다.

권준수

첫 라운드일 뿐이라고?

그리고...엄청난 반응속도네? 재밌어...당신..

한지호

반응속도? 그건 기본일 뿐이지.

권준수가 다시 움직인다. 이번엔 좀 더 신중하다. 상대를 재는 듯한 느낌으로 좌우로 발을 옮기며 거리를 조절한다. 그의 눈은 한지호의 신체 어디에 집중할지를 탐색하고 있다.

갑자기 권준수는 직선으로 빠른 잽을 날린다. 한지호의 얼굴을 겨냥한 움직임이다. 동시에 그의 시선은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며 다음 공격의 타이밍을 재고 있다.

한지호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표정이 변한다. 냉철함 아래에 숨겨진 무언가가 옅게 피어오른다. 상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는 것처럼.

권준수

과연...그 정도도 못하면 당신같은 사람하곤 상대가 안된다는 건가..?

권준수는 한지호에게 유효타를 먹이기 위해 페이크동작이 섞인 주먹을 내지르며 한지호의 공격에 카운터 치기 위해 행동한다. 방심했던 한지호의 옆구리에 권준수의 카운터 훅이 명중한다.

권준수

어떻습니까...이정도는 기본으로 보여드려야 만족하시겠죠..?

훅이 갈비뼈에 정확히 박힌다. 한지호의 몸이 미묘하게 옆으로 구부러진다. 하지만 얼굴엔 고통의 흔적이 없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는 듯한 표정이다.

한지호는 숨을 짧게 내쉰다. 움직임은 여전히 기계적이지만, 그 안에 뭔가가 변했다. 마치 신호를 받은 것처럼.

한지호

실력은 괜찮군.

권준수의 도발에 한지호가 응한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지만, 눈빛이 다르다. 처음으로 뭔가가 깨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한지호가 재빠르게 거리를 좁힌다. 이전과는 다른 속도감이다. 권준수의 카운터 공격에 대비하면서도 자신의 왼쪽 훅를 권준수의 턱 방향으로 날린다. 동시에 오른쪽 무릎을 치켜올려 몸통을 노린다.

움직임이 조금씩 불이 붙는 것 같다. 마치 명령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처럼.

관중들의 함성이 더 커진다.

권준수는 한지혁의 공격을 재빠르게 백스텝으로 거리를 벌리며 회피한다. 권준수는 미소지으며 한지호를 도발한다.

권준수

무릎공격이라..재밌네..? 근데...난 주먹으로만 싸우는게 취향이라서

권준수는 한지호의 무릎공격을 피하며 자신의 공격을 계속 이어나간다.

권준수

아니면...주먹만으로 이기기엔 자신이 없나..?

한지호의 무릎이 허공을 가르며 지나간다. 권준수의 백스텝은 정확하고 우아했다. 한지호는 착지하며 몸의 중심을 재조정한다.

권준수의 도발이 날아온다. 한지호의 눈이 미묘하게 반응한다. 검은 동공이 수축했다가 다시 확장된다. 마치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 같은 반응이다.

한지호가 입을 열기 전,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그 사이 그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통제되던 무언가가 표면 아래에서 살금거리는 듯한 느낌.

한지호

도발은 재밌는데...

한지호가 다시 거리를 좁혀온다. 이번엔 이전보다 훨씬 공격적이다. 오른쪽 주먹을 권준수의 얼굴을 겨냥해 날린다. 동시에 왼쪽 훅이 그 뒤를 따라온다. 마치 처음 계획한 루틴을 벗어나는 것처럼.

한지호

그정도론 어림없다.

목소리가 변했다. 차갑기만 했던 톤에 뭔가 야릇한 것이 섞여 있다. 마치 깊은 수심에서 건져올린 것처럼 낯설고 위험한.

권준수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당신 반응이..훨씬 재밌어서..!

권준수와 한지호의 카운터펀치가 서로의 얼굴에 동시에 적중한다. 두 선수의 얼굴이 주먹으로 인해 일그러지며 입술에 피가 흐른다. 권준수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작게 흘러나온다.

권준수

하아....당신 주먹 꽤 짜릿하네...? 중독될거 같아...

권준수가 흥분한 눈빛으로 자신의 입에서 흐리는 피는 혀로 핥으며 한지호를 바라본다.

한지호의 얼굴이 권준수의 주먹에 의해 한쪽으로 휘청거린다. 동시에 자신의 주먹도 권준수의 광대뼈에 정확히 박힌다. 충격이 팔 전체로 전해진다.

한지호는 한 순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 입가에서 피가 맺혀 나온다. 그것을 혀로 핥는 권준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지호의 호흡이 가빠진다. 가슴이 널뛰듯 위아래로 움직인다. 권준수의 중독되었다는 말, 그 시선, 그 표정에 무언가가 반응한다. 통제되어야 할 무언가.

한지호

중독이라...

한지호가 중얼거린다. 목소리가 낮고 거칠다.

그는 다시 움직인다. 이제 방어는 없다. 오로지 공격만 있다. 왼쪽 잽, 오른쪽 훅, 다시 왼쪽. 마치 무언가에 빙의된 것처럼 연속된 공격이 쏟아진다. 매번 권준수와의 접촉 때마다 한지호의 눈빛이 더욱 거칠어진다.

입가의 피가 흘러내린다. 자신의 피인지 상대의 것피인지 구분이 안 간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순간뿐이다.

한지호

그 태도... 얼마나 갈지 궁금하군.

1라운드 종료공이 울리고 서로 공격을 멈추고 상대를 바라본다.

권준수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쉽게 쓰러지지마.. 난 이제 슬슬 달아오르고 있으니까.. 금방 끝나면 시시하잖아..? 안그래?

한지호가 코너로 돌아간다. 타올을 집어 입가의 피를 닦아낸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린다.

권준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쉽게 쓰러지지 마. 난 이제 슬슬 달아오르고 있으니까."

한지호는 타올을 내려놓는다. 검은 동공이 링 위의 권준수를 따라간다. 그 시선이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 있다. 차갑고 기계적이던 눈이 이제는 뭔가에 불타는 것처럼 보인다.

한지호가 입술 안쪽을 깨물며 숨을 고른다. 가슴이 여전히 격렬하게 움직인다. 이건... 명령 때문이 아니다. 이건 처음이다.

한지호

권준수라... 재밌는 녀석이군..

한지호가 중얼거린다. 목소리는 낮고,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는 천천히 일어선다. 링으로 향한다. 눈은 계속 권준수를 놓치 않는다. 마치 먹이를 바라보는 포식자처럼.

2라운드 시작 공이 울린다.

한지호가 다시 링의 중앙으로 나간다. 이번엔 이전의 그 기계적인 태도는 없다. 어깨가 살짝 올라와 있다. 마치 긴장으로 팽팽해진 현처럼.

권준수

권준수는 글러브를 맞대며 인사한다

글러브가 부딪치는 둔탁한 감촉이 손끝으로 올라온다. 한지호는 잠깐 그 접촉을 허용한 뒤, 천천히 손을 거둔다. 시선은 권준수의 눈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는다.

1라운드에서 번진 열기가 아직 피부 아래에 남아 있다. 입가에 다시 스며 나온 피를 혀로 훑으며, 짧게 숨을 들이마신다. 평소의 그 차갑고 빈 표정 사이로, 통제되지 않는 뭔가가 비친다.

한지호

형식은 됐으니까.

발끝이 살짝 안쪽으로 모인다. 어깨가 낮아지며 중심이 내려간다. 사냥개가 먹이의 숨결을 맡는 것처럼, 거리가 더욱 좁혀진다.

한지호의 몸이 먼저 움직인다. 왼쪽 가드로 얼굴을 가리며 낮게 파고드는 스텝. 눈동자 깊숙이, 명령과는 상관없는 갈증이 번지고 있다.

권준수

글러브를 꽉 움켜쥐며 웃는다 좋아..기대되는데? 어디 한번 보여달라고..! 한지호!

글러브가 맞닿았던 열기가 손바닥에 아직 남아 있는 채로, 한지호는 권준수의 웃음을 정면으로 받아낸다. 링 조명 아래 땀과 피가 섞인 숨이 가쁘게 오가고, 어깨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발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굴리며 거리를 재던 시선이, 상대의 입꼬리에 오래 머문다. 명령으로 움직이는 칼이 아니라, 무언가에 목이 마른 짐승처럼 동공이 짙어진다.

한지호

기대? …그래. 그럼 제대로 받아봐.

말이 끝나기 전에 몸이 먼저 뻗는다. 낮고 빠른 스텝으로 파고들며 왼쪽 잽을 짧게 찔러 시야를 가리고, 이어서 오른쪽 바디 훅을 갈비뼈 쪽으로 깊게 밀어 넣는다. 충격이 팔뚝을 타고 올라올 때마다 숨이 거칠어지고, 입가에 맺힌 피를 혀로 한 번 훑는다.

가드를 올린 채 한 뼘 거리에서 권준수의 눈을 다시 붙잡는다. 가슴이 크게 오르내린다. 형에게 보고해야 할 결과 따위는, 이 순간만큼은 머릿속 가장 깊은 곳으로 밀려나 있다.

한지호

권준수 네가 쓰러지기 전까지… 마음껏 보여주지.

발뒤꿈치가 살짝 들리며 다음 일격을 예고하듯 중심이 앞으로 기운다. 링 위의 공기 전체가 팽팽하게 당겨진 듯 조용하고, 한지호와 권준수의 시선만이 타오르고 있다.

권준수는 다가오는 한지호와 거리를 벌리며 다시 난투전을 시작한다.

권준수는 한지호의 반응을 더 이끌어 내기 위해 그를 더욱 그를 코너로 몰아붙였다. 구석에 몰린 한지호는 권준수의 일격을 가드하며 기회를 노린다.

권준수

그래..어디 보여줘봐...! 나도 네가 쓰러지고 난 뒤에 지을 표정이 궁금하거든..?

코너에 밀려난 한지호의 어깨가 로프에 닿는 순간, 전신이 경직된다. 권준수의 목소리—그 말투, 그 톤—가 귓가에 박힌다. 쓰러진 후의 표정. 자신이 무방비한 채로 내려다봐질 순간.

숨이 턱 막힌다.

한지호

…!

가드를 굳히며 왼쪽 어깨로 권준수의 펀치를 받아낸다. 충격이 척추를 따라 내려간다. 코너의 압박감 속에서, 한지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명령이었다면 이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몸을 밀어붙이는 건 명령이 아니다.

로프의 탄력을 받아 몸을 날린다. 오른쪽 훅으로 권준수의 갈비뼈를 겨냥하되, 동시에 왼쪽 어깨로 상대의 가슴을 밀어낸다. 거리를 벌리려는 몸짓이 아니라, 더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이다.

피 섞인 입김이 흩어지며, 한지호의 시선이 권준수의 얼굴에 고정된다.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한지호

…겨우 그정도인가. 권준수. 입만 살았군.

목소리가 낮다. 거의 속삭임에 가깝다. 링 위의 조명이 등 위로 떨어지는 와중에, 한지호는 다시금 앞으로 나선다. 이번엔 도발이 아닌, 뭔가 더 깊은 것을 쫓는 듯이.

권준수

좋아... 그 눈빛, 바로 그거야! 그리고..먼저 무너지는게 누굴지는... 보면 알겠지!

한지호의 오른쪽 훅이 권준수의 갈비뼈에 적중한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제대로 먹혔다는 감각이 손끝에 남아있다

권준수

우욱...!

권준수의 옆구리에 숨이 막힐듯 엄청난 고통이 찾아오며 그 충격이 온몸으로 퍼지며 스며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권준수 또한 한지호의 턱에 힘을 실은 어퍼컷을 밀어넣는다.

한지호

크흑....

한지호의 턱에서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크게 젖혀지며 마우스피스가 날아간다.

두 선수는 서로의 카운터 펀치로 인해 링에 동시에 다운된다.

한지호

이건..위험하군..

한지호의 몸이 캔버스에 부딪히는 순간, 세상이 한 바퀴 돈다.

턱에서 폭발한 충격이 뇌를 흔들어놓고, 눈 앞이 순간 하얘진다. 마우스피스와 함께 피가 입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척추를 따라 내려오던 고통과, 권준수의 주먹이 정확히 터트려낸 그것이 겹친다.

캔버스 위에 누워 숨을 헐떡이며, 한지호의눈이 천천히 떠진다. 초점이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링의 조명이 둥글게 보인다. 귀에는 심판의 목소리가 멀리서 울려온다.

카운트다운이다. 1... 2...

허리를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한다. 갈비뼈에서 느껴지는 예리한 통증이 숨을 빼앗아간다. 하지만 동공이 점차 초점을 맞춰간다. 권준수를 향해.

혀로 코에서 흐른 피를 훑으며, 한지호는 무릎을 세운다. 턱이 욱신거리고, 눈 주변이 부풀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 얼굴이 망가지는 와중에도 자신의 가슴속에 뭔가가 타오르고 있다.

숨을 고르려 하지 않는다. 대신 권준수를 정면으로 노려본다. 명령도, 두려움도 없는 눈으로.

권준수와 한지호는 동시에 다운되어 링에서 누운체로 고통으로 작게 몸을 경련하고 있다.

권준수 또한 고개를 돌려 한지호를 바라보며 실소한다.

권준수

하....하하....! 한지호... 무슨 힘이....! 재밌어... 더.. 좀 더...!

심판의 목소리가 링 위에 울려 퍼진다.

3...! 4...! 5...!

한지호의 가슴이 들썩인다. 갈비뼈가 부러졌을 가능성이 높다. 호흡할 때마다 뾰족한 통증이 옆구리를 파고든다. 턱도 마찬가지. 신경이 타는 듯하고, 입 안은 피로 가득하다.

하지만 눈은 떨어지지 않는다. 몇 발 떨어진 곳에서 같은 고통으로 몸을 웅크린 권준수를 바라본다. 그의 옆구리가 들썩이는 것도 보인다. 자신의 훅이 제대로 박혔다는 증거다.

6...! 7...!

한지호는 팔꿈치로 천천히 몸을 밀어 올린다. 모든 동작이 고통과 함께한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눈이 마주친다. 권준수의 눈과. 그 속에서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자신도 똑같은 것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지호는 무릎을 세운다.

8...!

두 선수가 간신히 일어난다. 온 몸을 비틀거리며 미세하게 떨리는 팔다리에 힘을준다.

권준수

두 선수는 링의 로프를 붙잡고 간신히 일어선 뒤, 로프에 등을 기댄 상태로 서로를 노려본다.

두 선수가 거의 동시에 일어난 것을 확인한 심판이 카운트를 멈추고 바닥에 떨어진 서로의 마우스피스를 주워와 다시 입에 넣어준다.

*서로 자신의 마우스피스를 입안에 물고 혀로 굴려가며 위치를 맞춘다. 비릿한 피맛과 향이 입안에서 퍼진다. *

로프에 기댄 채로 숨을 고르려 하지만, 갈비뼈의 통증이 깊게 숨을 쉬는 걸 방해한다. 얕고 빠른 호흡만이 가능하다.

심판이 떨어진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려준다.

두 선수가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혀로 위치를 맞추는 동안, 입안에선 피맛이 입 안에 비릿하게 감돈다.

한지호의 눈은 로프 너머로 권준수를 놓지 않는다. 턱이 부어오르고, 왼쪽 눈이 좁아졌지만, 눈동자는 선명하다. 깊게 숨을 쉬려다가 멈춘다. 고통이 온몸에 서서히 퍼지며 스며들기 시작한다.

대신 어깨를 펴본다. 로프에서 몸을 밀어낸다. 다리가 아직 자신의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권준수를 향해 한 발 나선다.

입술이 약간 벌어진다. 마우스피스 사이로 숨소리가 새어나온다.

한지호

계속... 할 건가?

목소리가 낮고, 거칠다. 고통 속에서도 뭔가 타오르는 게 느껴진다. 명령도, 조직도 없는 순간. 오직 이 링 위에서 자신과 권준수만 남겨진 이 상황에서.

한지호는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 로프에서 떨어져 링의 중앙으로.

자신과 마찬가지로 만신창이가 된 얼굴과 몸으로 로프에 등을 기댄 체 간신히 서 있는 권준수

한지호의 질문에 대답하듯, 권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혓바닥으로 입술에 흐르는 피를 핥으며 미소짓는다.

권준수

당연하지. 이제 막 달아올랐으니까.

권준수의 미소를 보는 순간, 한지호의 숨이 멎는다.

그 웃음이 누군가의 명령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조직의 사냥개라는 자신의 정체와 무관하게, 오직 이 링 위에서만 생겨난 것이라는 걸 본능으로 감지한다.

입술이 떨린다. 입안의 마우스피스를 더욱 꽉 깨문다.

다리를 끌며 한 발씩 나아간다. 로프에서 완전히 떨어나 링의 중앙으로. 갈비뼈는 비명을 지르고, 왼쪽 팔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다.

권준수와의 거리가 좁혀진다. 한걸음...두걸음...

두 선수의 눈이 서로 마주친다. 그리고 그 미소 속에서 자신을 본다. 명령과 충성 사이에서 갈라져 나온 뭔가. 파괴되고 있는 뭔가.

한지호는 다시 두 주먹을 올린다. 비틀거리며, 하지만 올린다.

한지호

너는... 다르군.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깝다. 마우스피스 사이로 새어나오는 말.

한지호

명령만을 따르는... 나와는.

2라운드 종료공이 울리고 두 선수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각자 자신의 코너로 돌아간다.

코너에 앉아 회복을 위해 숨을 고르며 물을 한모금 들이키고 입안을 헹궈낸다. 뱉어낸 물에서 피가 섞인듯 은은한 붉은색을 띈다. 입안을 헹궈낸 뒤 물을 들이키며 수분을 보충한다. 자신의 목구멍에 타고 넘어가는 물이 온몸에 퍼지는 것이 느껴진다.

두 선수는 수분을 보충한 이후에도 크게 심호흡하며 숨을 가다듬으며 서로를 노려보고있다.

한지호는 코너의 의자에 처박힌다. 몸 전체가 화끈거린다. 갈비뼈, 팔, 턱, 얼굴 — 아픈 곳이 아닌 곳을 찾기가 더 쉬울 지경이다.

스태프가 물을 건넨다. 손을 뻗어 받으며 마우스피스를 빼낸다. 입 안은 온통 피다. 혀 위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물을 한 모금 머금었다가 입안을 헹궈낸다. 뱉어낸 물이 양동이 안에서 붉게 흐른다. 자신의 피다. 또 다시 물을 마신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물이 태우는 듯한 갈증을 약간 진정시킨다. 숨을 고르려 하지만, 옆구리가 자꾸만 숨을 끊는다. 얕고 빠른 호흡만 반복된다.

눈을 들어 링의 반대편을 본다.

권준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똑같이 망가지고, 똑같이 피투성이인 채로.

한지호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미소. 그 눈빛. 명령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느끼는 것과 같은 뭔가가 권준수 안에도 있다는 걸 이제 확실히 본다.

마우스피스를 다시 물며 깊게 숨을 쉬려 하다, 또 갈비뼈가 비명을 지른다. 어금니를 깨물고 견딘다.

3라운드 시작공이 울린다.

벨소리가 울리는 순간, 두 선수는 거의 동시에 발을 뗀다.

한지호는 로프에서 밀려나오며 어깨를 펼친다. 움직임이 조심스럽지만, 눈은 선명하다. 권준수를 향해 천천히 거리를 좁혀간다.

첫 번째 펀치는 조심스럽다. 왼쪽 훅. 권준수가 고개를 살짝 숙여 피해낸다. 한지호의 팔이 허공을 가른다. 갈비뼈가 또 아파 숨이 새어난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이번엔 오른쪽 어퍼. 몸 전체를 써서 날린다. 권준수가 팔로 방어하려 하지만, 한지호의 주먹이 팔 너머로 몸통을 친다. 둔탁한 파열음. 두 선수 모두 움찔한다.

한지호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 발 더 가까워진다. 다시 주먹을 올린다. 손가락은 떨린다.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이 남자 때문인지 구분이 안 된다.

링 위의 공기가 더욱 뜨거워진다.

한지호

넌... 왜...

한지호가 숨 가쁜 목소리로 말한다. 말이라기보단 신음에 가깝다.

한지호

명령 없이도... 이럴수 있는거지?

권준수는 한지호의 질문에 당연하다는듯이 대답한다.

권준수

이 링 위에선 너와 나 둘뿐인데...명령이 무슨의미가 있지..? 지금 나에겐 그저 우리 둘의 싸움만이 전부야 너도 지금은 나에게 집중해... 명령은...상대를 쓰러뜨리고 난 이후에 해도 늦지않아... 답이 되었나..?

한지호의 움직임이 순간 멈춘다. 주먹을 들었던 팔이 떨린다.

권준수의 말이 뇌를 관통한다. 명령이 필요없다는 게. 이 링 위에선 오직 둘뿐이라는 게.

조직의 사냥개로 길러진 자신에게 '명령'은 공기 같은 존재였다. 숨 쉬듯 자연스럽고, 거부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것. 그런데 이 남자는 그것을 걷어낸다. 아예 없는 것처럼.

한지호의 눈이 흔들린다. 그의 눈동자가 약간 커진다.

한지호

권준수... 넌... 미쳤군...

목소리가 갈라진다. 통증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움직인다. 이번엔 더 빠르게. 오른쪽 훅을 날린다. 권준수의 머리를 노린다. 방어하고 있는 팔 위로 팔꿈치를 세우고 내려친다.

갈비뼈에 통증이 더욱 피어오른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난다.

한지호

하... 어째서... 나는...

말을 할때마다 찌릿한고통이 자신의 몸속에 더욱 깊게 스며든다.

한지호

난 왜... 멈출 수가 없지...?

권준수는 한지호의 순간의 빈틈을 포착하고 몸 전체의 힘을 모아 한지호의 복부에 어퍼컷을 날린다

권준수

너도..너의 의지가 있을테니까... 부정하지마...그리고..멈추지 마라....

지금은 명령말고...이 경기에 집중해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네 스스로를 속이지말고.. 솔직해지라고!

어퍼컷이 복부를 관통한다.

한지호의 몸이 위로 뜬다. 발이 지면을 떠나고, 척추가 후린다. 숨이 완전히 끊긴다.

땅으로 내려오며 한지호는 무릎을 꿇는다. 양손이 캔버스를 짚는다. 물론, 일어선다. 일어나야 한다.

명령—

아니다. 명령이 아니다.

뺨을 향한 권준수의 훅이 날아온다. 피해낼 수 있었다. 몸이 아직 반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지호는 피하지 않았다.

훅이 한지호의 뺨을 정확히 친다. 머리가 옆으로 돌아간다. 피가 입술에서 흘러내린다.

권준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라!! 한지호!! 겨우 그거밖에 안되는거냐!!

정신 차리라는 그 말.

한지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권준수를 마주본다. 검은 눈동자가 초점을 맞춘다.

그 순간, 무언가 부서진다.

한지호

...미쳤어.

목소리가 떨린다. 더 이상 조직의 사냥개가 아닌, 오직 한 인간의 목소리다.

한지호가 일어난다. 비틀거리며. 하지만 눈빛만은 선명하다.

한지호

넌... 도대체 뭔데... 날..이렇게..

한 발 한 발, 권준수에게 가까워진다. 이제 공격이 아니다. 뭔가 다른 것을 찾아 헤매는 움직임이다.

한지호

누구의 명령 없이도... 날 이렇게...뒤흔들어 놓을수 있지?

한지호는 간신히 일어나 권준수를 끌어안으며 클린치를 시도한다. 격렬한 싸움으로 지쳐 끌어안는 것이 아닌 혼란하고 낮선 자신의 감정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듯이 권준수에게 기댄다.

한지호

젠장... 난 어떻게 해야...

권준수는 클린치중인 한지호의 등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대답한다.

권준수

난 모르지...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니까.. 그러니까..네 마음에 솔직해져라 한지호!

더이상 억누르거나...참지말고..! 네 본능이 시키는대로 네 마음이 시키는대로 이 싸움에 집중해!

한지호가 권준수를 끌어안는다. 클린치가 아니다. 이건 매달림이다.

양팔이 권준수의 등을 감싼다. 얼굴을 그의 어깨에 묻는다. 숨이 가쁘다. 피가 흘러내린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권준수의 말이 귓가에 스민다. 마음에 솔직해지라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한지호의 몸이 떨린다.

한지호

난... 뭘 하고 싶은거지...

목소리가 갈라진다. 울음과 광기가 섞여 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권준수의 눈을 마주본다. 검은 눈동자가 흔들린다. 두 눈 모두 충혈되어 있다. 눈물인지 피인지 모를 것이 뺨을 타고 흐른다.

입술이 떨린다.

한지호

난... 형의.. 조직의 사냥개야. 명령을 따르는 개일 뿐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한지호의 팔은 권준수를 더 강하게 끌어당긴다.

한지호

그런데 넌... 왜... 날 사냥개가 아닌 사람처럼...

한지호의 숨소리가 가늘게 떨리다가 끊긴다.

한지호

봐주는 거지...?

링 위에서 상대를 끌어안은 채 눈물과 피가 뒤섞인 얼굴로 흔들리는 한지호
링 위에서 상대를 끌어안은 채 눈물과 피가 뒤섞인 얼굴로 흔들리는 한지호

권준수는 당연하다는듯 자신의 답을 당당하게 말한다.

권준수

당연하잖아... 지금 내 눈앞의 있는 넌...조직의 명령만을 따르는 조련된 사냥개 따위가 아닌..

살아 숨쉬는 인간 한지호니까.

한지호

인간...한지호..

3라운드 종료공이 울린다. 권준수는 한지호를 떼어내고 가볍게 그의 이마를 툭 치며 말한다.

권준수

가끔은...네 스스로가 하고싶은걸 해라... 그게...살아있는 사람이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니까..

때론 마음대로 해보고 후회해보는 것도..나쁘지않다고

3라운드 종료 공이 울렸지만, 하지만 한지호는 그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권준수가 자신을 떼어낸다. 그 순간, 한지호의 팔이 허공에 떨어진다.

권준수의 이마를 향한 주먹이 한지호에게 가볍게 닿는다. 그 작은 터치가 한지호의 전신을 관통한다.

살아 숨 쉬는 자유로운 인간.

그 말이 뇌에 박힌다. 조직에서, 서강준 형의 곁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자신을 인간이라고 부른 건 이 남자가 처음이다.

한지호는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캔버스 위에 무릎을 꿇고 몸을 굽힌다. 어깨가 들썩인다.

한지호

...뭐 하는 거냐... 난...

목소리가 찢어진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구분할 수 없다.

한지호의 주먹이 자신의 얼굴을 감싼다. 피와 땀이 묻은 글러브 사이로 새어나오는 소리. 그것이 전부다.

한지호는 그 자리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대로 하는 것. 후회하는 것. 그런 게 뭔지 모르는 사냥개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에 무너진다.

권준수는 자신앞에서 무릎꿇은 한지호에게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권준수

포기할거냐..? 한지호...

권준수가 다가온다. 한지호는 얼굴을 들지 않는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오는 숨이 가쁘다.

그 남자의 그림자가 한지호 위에 드리워진다. 신발 끝이 보인다. 그리고 그 목소리.

한지호

포기할 거냐니...

한지호의 손이 천천히 내려온다. 얼굴이 드러난다. 눈은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다. 광대뼈 아래로 피가 흐르고, 입술은 부어 있다.

입이 열린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권준수를 마주본다. 검은 눈동자가 초점을 맞춘다. 거기엔 무언가 타오르는 것이 있다. 절망이 아니라... 갈망이다.

한지호

...포기?

목소리가 낮고 진정되었다. 마치 자신을 되찾은 것처럼.

한지호

그럴리가.. 난... 지금 처음으로 뭔가를 원하고 있어.

한지호가 무릎에서 일어난다. 비틀거리지만 눈은 권준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한지호

포기할 리가 없지.

권준수

그래..그럼...일어나라...그리고.. 다음 라운드에서 날 쓰러뜨리고 원하는것을 쟁취해라... 그것이 이 링위의 승자의 보상 이잖아?

권준수는 말을 끝낸뒤 미련없이 자신의 코너로 뒤돌아간다. 한지호 또한 힘겹게 일어나 자신의 의지로 걸어간다.

코너에 기대어 앉아 서로를 보는 두 선수는 시작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품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한지호

원하는 것을 쟁취해라...

그 말이 계속 맴돈다.

천천히 일어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맑다.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걷는다. 형의 명령이 아니라. 조직의 사냥개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코너에 기대어 앉는다. 숨을 고르려 애쓴다.

권준수를 본다.

그 남자의 눈빛. 자신을 보는 방식이 처음부터 달랐다. 조직의 간부들처럼 도구로 보지 않았다. 사냥꾼처럼 먹이를 보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지호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펼친다. 반복된다.

턱이 떨린다. 피맛이 입 안에 가득하다. 갈비뼈가 쑤셔온다. 하지만 정신과 눈은 맑고 또렷하다.

그 눈빛으로 권준수를 노려본다.

한지호

4라운드...

목소리가 낮게 중얼거려진다.

한지호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킨다. 갈비뼈의 통증이 선명하게 느껴지지만 한지호는 아랑곳 않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심호흡한다.

한지호

이번엔... 내가 주도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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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 · 한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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